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많이 놀라셨죠? 그들이 왜 오랫동안적대적 갈등을 겪어 왔는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면 깊은 갈등과 분쟁의 원인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근대 역사
1차 세계 대전 전후 유대 민족 상황
프랑스 혁명 이후 유대인들에게도 시민으로의 권리가 부여됨에 따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고 점차 유럽 시민 사회에 동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동화되고자 해도 언제든지 유대인 박해가 부활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신되었다. 빈 출신의 유대계 오스트리아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 역시 그중 한 사람으로 1896년 그는 <유대 국가>(Der
Judenstaat)라는 저서에서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들의 민족 국가를 재건할 것을 역설한다. 그의 주장은 이듬해인 1897년 시온주의자 세계대회(ZO)의 수립으로 점차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추어 나간다.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힘을 발휘해 1903년 헤르츨은 영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대신 우간다에 유대인들의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은 어떻느냐'라는 제안을 받았고, 당시 ZO 수장이였던 하임 바이츠만은 '오로지 조상들이 살았던 팔레스타인만이 우리들의 터전이 될 수 있다.'라며 영국의 제안을 거절한다.
1차 세계 대전 와중이었던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동 지역의 통치자인 오스만 제국이 패배한 이후 영국은 ‘팔레스타인’이라고 알려진 지역을 장악했다. 영국은 동맹국이었던 프랑스, 러시아 제국과 '전쟁 이후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분할한다'는 내용의 비밀 협정을 체결한다. 이 비밀 협정에 의거하여 팔레스타인 일대는 영국의 관할로 들어오는 것이 계획되었다.
밸푸어 선언
이후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가 적극적으로 시온주의자들을 지지하면서, 마침내 1917년 11월 2일 다음과 같은 내용이 공식적으로 발표된다.
"본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세우는 것에 대하여 지지를 표하며 이를 성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팔레스타인에 거하는 비 유대인의 시민적 그리고 종교적인 권한에 대해, 또는 타국에 거하는 유대인의 정치적인 상태에 대해 아무런 편견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선언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영국의 위임통치 시절 규정에도 명시됐으며, 1922년 새로 창설된 국제연맹(UN의 전신)에서도 승인받았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 살아 왔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또한 이 땅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이에 반대했다.
2차 세계 대전과 이스라엘 독립 선언
1920년대~1940년대를 거치며 이곳에 정착하는 유대인 숫자가 늘어나게 된다. 대부분 유럽에서의 박해,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로부터 탈출해 오는 이들이 많았다.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사이가 점점 악화되자 1947년 유엔은 주민 투표로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채택했다. 유대인들은 이 결의안을 환영했으나, 아랍인들은 이에 반대하여 예루살렘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유대인 밀집지역을 공격하였다.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했고, 다음 날 영국의 통치는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 후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시리아와 레바논의 공격으로 제1차 중동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로 팔레스타인 분할안은 실행되지 않았다.
현재의 이스라엘
이후 수십 년 동안 더 많은 전쟁과 갈등이 이어졌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 대부분을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끝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평화 협정은 맺어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쟁 지역으로 표시한다. 반면 팔레스타인은 분쟁 지역을 자신들의 구역으로 표시한다.
가자 지구
가자 지구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팔레스타인의 통치 지역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접해 있다. 중동의 시나이반도의 북동부, 지중해의 동쪽 끝에 면(面)하여 위치한 이 지역은, 요르단 강 서안 지구과 함께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의 영토로 속해 있는 곳이다.
가자 지구라는 명칭은 중심도시인 가자에서 유래하였다. 인구가 급증하여 한국의 세종특별자치시 정도의 면적인 약 360제곱킬로미터 정도의 면적에 거주하는 주민은 200만 명(2016년 기준)을 넘어섰다. 주민의 80%가 식료품 등의 원조에 의존하여 생활하며, 실업률은 40% 이상이다. 유엔 인구 기금의 예측에 의하면, 2020년에 가자지구에는, 거주불능수준으로 인구가 넘쳐나고, 2030년에는 인구가 약 3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가자지구 인구의 3분의 2는 1948년 제1차 중동 전쟁에 의해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 또는 그 자손이다. 그 난민 문제의 해결책은 현재도 요원(遙遠)한 상태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쟁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는 서로 합의할 수 없는 여러 쟁점이 존재하는데, 그 중엔 다음의 내용도 포함된다.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양도하는 영토의 범위와 시기
-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선포 시기
- 예루살렘 지위문제
-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문제
하마스란?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수니파 이슬람주의 및 민족주의 정당이자 준군사조직이다.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투쟁을 주도하고 있으며, 당명인 '하마스'는 하라캇 알무카와마 알이슬라미야의 아랍어 머리글자로서 "이슬람 저항 운동"을 뜻하는 동시에 아랍어에서 "힘"과 "열정"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 캐나다, 유럽 연합,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는 반면 시리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베네수엘라, 파키스탄, 중화인민공화국, 이란, 러시아, 튀르키예, 및 기타 아랍 국가들은 하마스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한다.
하마스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이스라엘과의 평화 공존책인 양국 방안을 지지하던 종래의 집권여당 파타를 누르고 승리하였고, 이후 파타와의 권력 분쟁 끝에 파타는 서안 지구, 하마스는 가자 지구에서 집권하게 되었다.
하마스는 결성 초기인 1987년에는 요르단 강 서안 지구,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전역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2009년 7월 하마스의 정부 지도자 칼레드 메샬은 하마스는 1967년 국경을 기초로 한 팔레스타인 국가를 포함하는 결의안을 위해 협력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으며, 여기에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갈 권리를 갖고 동예루살렘이 새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가 되는 것을 보장할 것도 요구하였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 이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팔레스타인에는 이슬람 민족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본인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들의 영통에 유대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더구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포하였으며 이후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이로인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오랫동안 적대적 괸계가 지속되어 왔으며,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 단체이자 준군사 단체다. 따라서 지금까지 자신들의 주장 및 요구를 위해 지속적으로 무력을 사용해 왔다.
<출처: 위키백과>